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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의 수기

포피이 2024. 4. 2. 02:06

- 20XX년 02월 28일 -

 

지극히도 평범한 인생이였습니다. 

 

저는 한 평생 평범하지 않으려 발버둥쳤습니다. 하지만.. 평범이란 어두운 감옥에선 비범함이란 열쇠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창살 너머로 빛나는 소수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일, 갈망하는 일, 신께 기도하는 일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나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확률에 따라 도태된 평범한 인간은 소수의 인간을 위해 피라미드의 주춧돌 처럼 그저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건가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존재는 그렇게 서서히 어두운 감옥에서 수십미터 밑으로 꺼져버리는 것이려나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돌아가는 걸까요..

 

참으로 비탄스러운 일입니다. 

 

 처음 태어났을 땐 모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생명을 위해 모두가 기뻐하고 눈물을 흘려주었죠. 나라는 존재의 특별함이 의미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였던 것입니다. 제가 좌절하게 된 순간은 어릴 적 유치원에 입학하고 난 뒤였습니다.

 

 엄마의 손에 따라 처음 유치원을 나갔을 때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같은 또래라는 이유만으로 한 곳에 전혀 모르는 인간들을 앉혀놓고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온 언어, 문자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 놀이, 예절이라는 족쇄를 배웠습니다. 족쇄는 저의 자유로움을 통제했습니다. 난 그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인데 어째서 같은 언어를 배우고 같은 행동을 강요받는 거지? 나는 저들과 다른데? 왜 난 배고플 때 밥을 못 먹고 앉고 싶을 때 일어나 있어야 하며 밖에 나가고 싶을 때 나가지 못하는 거지? 이런 저의 원론적인 생각들은 질서라는 칼날의 횡포에 갈기갈기 찢겨져나갈 뿐이였습니다.

그렇게 저를 비롯한 모든 이가 똑같은 말투,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평범함이란 악마가 저를 엄습한 순간이였습니다. 순간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 현기증이 나고 손발에 땀이 나면서 쓰러질 뻔했습니다만 정신력으로 견뎌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뱀처럼 조용하게 나타나 서서히 저의 목을 조여왔습니다.

 

 자유 놀이 시간, 무리의 한 아이가 일어서서 선생이란 사람께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안겼습니다. 모두가 그를 따라 메아리처럼 말을 따라하며 뒤이어 안겼습니다. 저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 이질적이였습니다. 수 많은 생각들이 풍선처럼 떠오르고 터지고를 반복했습니다. "왜 모두 똑같이 따라하는거야? 따라해야 하는거야? 뭐가 맞는거야? 나도 안겨야 하나? 어..? 어라? 왜 나도 그들과 똑같이 따라하려고 하는거지?" 뇌의 세포들이 엉킨 실타레처럼 말려들어가는 느낌이였습니다.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멈추듯 되뇌일수록 머리가 짓이겨져 버티지 못할 지경이였습니다. 한 두 차례 제 머리를 제 손으로 때리고 나서야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단순히 머리가 아파서 울었는지, 평범한 세상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저만이 특별하고 빛나는 존재인줄 알았습니다. 앉기, 걷기 등의 사소한 행동에도 박수를 치고 기뻐해주었으니까요. 저의 특별함이란 빛이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유치원에서의 사건은 저에게 거대한 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조금만 올려다 보면 저의 빛은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세상이란 거대한 빛에 가려질뿐이란 걸요. 그 뒤로 저의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앉아 꺼져있는 티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공간엔 오직 저와 티비, 반쯤 쳐진 커튼, 그리고 석양이 져 어두워진 거실, 적막한 바람 소리뿐이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저는 공기처럼 두둥실 떠올라 티비 앞에 앉아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에서 봤던 아이의 뒷모습이였습니다. 흑채색이였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길게 이어진 그림자는 어딘가 외로워보였습니다. 갑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슬픈 감정들이 수도관 터지듯 밀려왔습니다.  알고 싶지 않았던 퍼즐이 내 마음대로 끼워맞춰져 무언갈 알아버린 것이였으려나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죽음에 대해선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동네에 고양이가 많아서 제가 멋대로 이름을 붙여주며 길 지나가면서 인사했었는데 검은색 고양이 사로가 이틀 동안 같은 자리에 누워 있는 걸 보았습니다. 속상한 건 그 자리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사로를 "으 고양이 죽었네"라며 서둘러 피해간다는 것이였습니다. 사로를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던 따뜻한 손들은 꿈 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니 정말 꿈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던 건 사로가 사라졌어도 똑같이 사로를 쓰다듬었던 손을 다른 고양이한테서 보았던 것입니다. 모든 고양이는 다 똑같은 손을 만나 쓰다듬 당하고 필요없어지면 결국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라지는건가요? 그럼 사로는 왜 존재했던 건가요? 사로 말고도 다른 고양이들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 땐 잘 몰랐습니다. 특별한 고양이들은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간다는 것을. 전 사로가 행복했으면 했지만. 정답은 모르겠네요. 고양이 언어를 배웠으면 모를까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마다 거실에 앉아 아파트 베란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다 사라지는 거라면 나는 지금 왜 밥을 먹고 왜 유치원을 가고 왜 학원을 가고 집에 와서 베란다를 보고 있는 걸까? 특별해질 수 없는데. 나랑 비슷한 인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 표정, 몸짓, 말투를 잊어버린 게 그리고 제가 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같은 얼굴을, 같은 말투를, 같은 몸짓을 하게 된 게. 그들이 하는 생각을 따라하고 그들이 바라는 행복을 따라하게 된 게 말이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 우리 모두는 달라".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세상은 소수의 천재들로 발전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합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잊혀집니다. 그들이 걸어온 길, 바라던 일, 해냈던 일 모두 말입니다. 평범한 일에 박수갈채를 보내기엔 평범한 사람들의 손바닥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요? 평범한 인간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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